"분야는 상관없다. 전문가라면 이정도 수준의 책은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연필을 마지막으로 잡아본 지가 언제인가?
요즘 학생들도 연필을 사용하는지 궁금하다. 책 제목처럼 연필 깎기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절대 필독을 권한다. 하지만, 과연 연필 깎기라는 기술(?)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전에 이 책을 기획한 출판사 측에서도 수익성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다. 차라리 '잔듸 깎기의 정석' 이라면 몰라도.
요즘 같이 모든 일의 기준이 이분법(돈이 되는가? 돈이 안되는가?)으로 구분되어지는 시대에서, 분명 연필 깎기는 불필요함을 넘어, 무모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된 것은 기존의 책들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였다. 남들이 대세를 따라 안전한 길을 선택할 때, 그들과는 다른 방향의 시각을 통해 미쳐 알지못했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경우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껏 읽었던 어떤 책들 보다도 저자의 진지함을 엿 볼 수 있었다. 읽는 도중에 피식하는 웃음 조차 저자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연필깎기가 이렇게 대단한 기술이었나 할 정도로 200 여 페이지에 걸쳐 다루고 있다. 연필깎기의 자세, 마음가짐, 도구 종류 및 사용법 설명 등.
연필깎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책을 잡은 독자가 아니라면, 자기가 가진 기술에 대한 애착을 가진 저자의 모습이 행복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정말 이정도로 애정을 가졌던가.
다음은 읽던 도중 가장 크게 빵 터진 구절이다.
칼과 연관된 다양한 활동의 난이도 비교(칼로 연필 깎기를 중간으로 놓았을 때 가장 쉬운 것부터 난이도 순으로 나열) 칼에 손을 뻗을 수 있다면 칼을 집어들 수 있다. 칼을 집어들 수 있다면 칼을 욕조에 담글 수 있다. 칼을 욕조에 담글 수 있다면 나이프로 잼을 바를 수 있다. 나이프로 잼을 바를 수 있다면 빵칼로 빵을 썰 수 있다. 빵칼로 빵을 썰 수 있다면 스테이크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 수 있다. 스테이크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 수 있다면 카빙 나이프로 칠면조 살을 발라낼 수 있다. 카빙 나이프로 칠면조 살을 발라낼 수 있다면 전기톱으로 토템폴을 조각할 수 있다. 전기톱으로 토템폴을 조각할 수 있다면 주머니칼로 연필을 깎을 수 있다. 주머니칼로 연필을 깎을 수 있다면 주머니칼로 나무를 깎아 오리 조각상을 만들 수 있다. 주머니칼로 나무를 깎아 오리 조각상을 만들 수 있다면 일자 면도기로 털 한 가닥을 제모할 수 있다. 일자 면도기로 털 한 가닥을 제모할 수 있다면 메스로 각막을 제거할 수 있다. 메스로 각막을 제거할 수 있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비서와 바람을 피울 수 있다. 비서와 바람을 피울 수 있다면 협박을 받을 수 있다. 협박을 받을 수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는 상상을 할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르는 상상을 할 수 있다면 칼에 손을 뻗을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통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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