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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4일 일요일

마흔의 서재


"내가 바라던 삶을 사는 사람이 쓴 책. 다독 그리고 인생의 경험을 통해 마흔에 준비해야할 것을 알려준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기전에 책 날개에 적힌 저자의 약력을 보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잘은 모르지만 저자는 내공이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서재에 무려 2만 5천권이나 되는 책을 보유하고 있다니!).

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내려와 자연과 벗삼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저자를 책을 읽는 내내 부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또한 저자와 같은 삶을 살기위해 꿈꾸고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의 실제 삶을 보며, 내가 꾸는 꿈이 허무맹랑한 목표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안도감과 용기를 얻었다.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를 들자면, 첫째, 아직 마흔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나이지만(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 나이가 될터, 미리미리 준비하자는 생각에서. 두번째는 내가 평생 읽어도 다 못 볼 책을 읽었다는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하는 호기심이 일어서 였다.

마흔을 지내고, 보낸 저자가 마흔을 준비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해주고픈 삶의 조언을 그가 읽었던 책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내공을 말해주듯 무려 100 여권의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분명 한권의 책을 읽었을 뿐인데도, 마치 100 여권의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개한 책들 중에 몇 권은 나중에 읽어보려고 따로 메모를 해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구절 몇 부분을 소개한다.

책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책은 곧 나를 말해주는 것이다. 즉 나만의 고전을 만드는 것은 곧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만의 고전이 없다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고 해도 진정한 독서가라고 할 수 없다. 2-3년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자. 그리고 그 중에서 여전히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몇 권을 골라보자. 그렇게 선택한 책을 반복해서 읽어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진정한 독서가로 추앙받게 될 것이며, 곁에는 나만의 귀한 고전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한번 읽었던 책은 거의 대부분 두번 다시보지 않았는데, 지금껏 읽었던 책들 중에 나 스스로 높은 평점을 줬던 책들을 다시금 읽어봐야 겠다. 그때의 느낌과 어떻게 다를지.
그렇게 다시 읽은 책들의 목록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나요? 첫째, 책에 몰입한다. 둘째, 책 읽는 즐거움 그 자체에 빠져든다. 셋째, 책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넷째, 읽은 책들을 다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섯째,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른다.

항상 염두에 둘 것.

나는 삼백가지의 꿈을 꾸고, 이백아흔아홉 개는 버렸습니다. 끝내 이루지 못할 게 분명하니까요. 그런데 나를 만든 건 바로 기어코 이룬 한 개의 꿈이 아니라 그 이백아흔아홉 개의 덧없이 버려진 꿈이었지요. 삶을 만드는 건 우리가 걸어온 길이겠지만, 정작 우리 마음을 끌고 가는 건 가보지 못한 그 수많은 길들 아니던가요?

여태껏 터무니 없다고 생각되어 포기해버리고, 지워버렸던 꿈들을 다시금 적어봐야겠다.

버킷 리스트를 미리 쓰고 실행하면 죽음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삶이 행복해진다. 마흔에는 버킷 리스트를 써라. 그러면 그 어떤 죽음 앞에서든 삶은 튼튼해질 것이다.

나의 버킷 리스트는 몇 가지나 될까.

아침은 하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며 잠을 깨는 시간이다. 우리는 아침에 가장 덜 졸립다. 우리가 천분에 의해 깨지 않고 하인이 기계적으로 살짝 건드려주는 덕분에 잠을 깬다면, 또 새롭게 얻은 힘과 내면의 열망 및 거기에 동반되는 천상의 굽이치는 음악과 대기를 가득 채운 향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장의 종소리에 잠을 깬다면, 우리가 그날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적어도 우리가 잠들었던 전날보다 더 고귀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루하루에 자신이 아직 더럽히지 않은 더 이른 더 신성한 새벽의 시간이 있다는 걸 믿지 못하는 사람은,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어둠에 싸인 내리막을 걷는 사람이다. 분명히 모든 기억할 만한 사건은 아침 시간과 아침의 대기에서 일어난다.

온전한 아침 시간을 맞았던 적이 언제였던가.

왜 건축가가 됐는가.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 질문에 답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언제부터 건축가에 뜻을 뒀는지조차 기억을 더듬어보면 흐릿하다. 허나 적어도 이 말만은 할 수 있다. 내게 건축이란 인간을 알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 그와 동시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지구에 거주하는 일원으로서 사회와 불화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

나는 왜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는가?
위와 같은 거창한 답변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해본 것 중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일이었다는 것.

책에서 들려준 이야기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머릿 속에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곁에 두고 책빨(?)이 떨어질 때마다 보고 또 보고 또또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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