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이곳으로 이전했습니다. 또는 구글 앱스토어에서 'likewind' 를 검색해서 설치해주세요. 설치링크

2017년 12월 2일 토요일

88일차 - 첫날부터 귀인(貴人)을 만나다니 [Hekou - Lao Cai]

베트남에 입성하는 날.

어젯밤 비가 왔지만, 아침이 되자 비가 그쳤다.
환전소가 여는 시간에 맞춰 10시 무렵 숙소를 나왔다. 환율은 '1위안 == 3500동'. 남은 위안화 전부를 환전했다. 그리고 국경 출입사무소 건물로 향했다.
이곳 1층은 베트남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경우 이용하고,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나가는 경우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이동해야 한다.

나는  자전거가 있기 때문에, 2층으로 올라가지 않고, 베트남 상인들이 이용하는 통로를 이용했다. 그들은 중국의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해 자전거에 실어 베트남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 차례가 되자, 검문소 직원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2층에 가서 출국 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2층에서 인적사항을 종이카드에 적고 사진도 찍었다. 중국사람들은 별다른 과정없이 통과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외국인이라고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수속을 마치고, 자전거를 찾으러 갔다. 직원은 패니어 중 하나를 가리키며, 안에 내용물을 꺼내보라고 했다. 모든 패니어를 꺼내보라고 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별다른 물건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중국과 베트남을 잇는 국경의 다리로 이동할 수 있었다.

<중국과 베트남을 잇는 기찻길 다리>

그냥 홍강을 지나는 다리일 뿐인데, 한쪽은 중국이고 다른 한쪽은 베트남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1시간의 시차가 있다. 중국 쪽은 1시간이 빠르고 베트남 쪽은 1시간이 느리다.
국경의 다리 주변에는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아마도 국경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한 훈련인 듯 하다. 베트남 국경 출입사무소에 다다라서, 역시 자전거를 밖에 세워두고, 입국 절차를 밟았다.
직원이 내 여권을 보더니, 보건 검역 관련 문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그 옆에는 메르스 관련 책자들이 놓여 있었다. 작성지에는 이런 문항이 있었다.
'지난 14일 동안 아래 국가에 방문/체류한 적이 있습니까?'

이란/쿠웨이트/예멘/바레인/레바논/아랍에미리트/카타르/오만/요르단/한국/사우디아라비아

중동의 국가들 사이에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 다행히 나는 메르스가 발병하기 전에 출국을 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없이 입국할 수 있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부터는 베트남이다.

불과 몇 백미터를 이동해왔을 뿐인데, 무척이나 덥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애용하던 바이두 맵 어플 대신, 'Map with Me' 앱을 실행시켰다.
중국에서 넘어 올때가 10시 반 정도 였는데, 베트남으로 들어오니 10시가 안됐다. 뭔가 시간을 번 느낌이다.
베트남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도로에 차량보다 오토바이들이 더 많다는 것.

<베트남에서 바라본 강건너 중국의 모습>

라오까이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이 곳을 벗어나자, 비포장 길이 나오더니, 진흙 웅덩이가 곳곳에 자리잡은 길이 나왔다. 지도에 따르면 현재 달리는 길은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였다.
보통의 경우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생각하지만(물론 포장된 구간도 있다!), 돌과 자갈이 깔린 산길구간, 강물이 도로로 흘러넘쳐 자전거에서 내려 물을 헤치고 가야하는 구간도 있었다.


<산 전체가 녹음으로 덮여있다>

베트남에 들어오면서 놀란 것 중 하나는 길을 지나면 어린아이들이 '헬로' 하고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이런 광경은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은 좀 심할정도(?)로 잦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종종 그런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다. 순수한 사람들이다.

오늘은 첫날인 만큼 무리하지 않고, 7~80km 까지만 달리려고 했다. 지도 상에 숙소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규모의 도시를 목적지로 생각하고 달렸는데, 오토바이를 타던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그보다 10 여 km 를 더 가야 한단다. 이때가 오후 5시. 베트남 시간으로는 5시였지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마치 오후 6시 같았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저씨는 일반도로가 아닌 고속도로로 가라고 했다. 그러면 빠를 거라고.
현재 내가 있는 도로 위에 대교가 있었는데, 그곳이 고속도로라고 했다. 그곳으로 연결되는 곳을 알려주었다. 자전거가 고속도로로 갈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한다.

<도로 표지판. 중국에서 보던 것과 비슷하다>

보통 고속도로에 진입하거나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인터체인지를 통하지만, 여기서는 곳곳에 개구멍(일반도로와 고속도로를 분리하기 위해 철조망을 쳐놨는데, 오토바이만 통과할 정도의 크기로 구멍이 나있다)이 있다. 이곳을 통해 고속도로로 진입하거나,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얼마전 겪은 중국에서의 일이 생각나 걱정을 했지만, 고속도로에는 오토바이도 보였다. 전구간이 포장도로라 확실히 빨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단점이 있었으니, 일반도로로 빠져나가야 하는 구멍을 잘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큰 도시들의 경우, 별도의 인터체인지가 있지만, 그보다 작은  마을의 경우, 별도의 그것이 없다. 그래서 잘못하면, 지나쳐 가기 쉽다.
내가 그랬다. 부랴부랴 구멍을 찾아 일반도로로 내려왔다. 근처 가게 주인에게 호텔이 있을 만한 곳을 물었더니, 그곳에는 없고, 3~4km 를 왔던 길을 되돌아 가면 있단다.
그 때 마침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 도착한 그 곳. 왠지 이상하다. 아무리봐도 호텔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사방이 논 밭이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졌고. 비는 더더욱 세차게 내린다. 근처 가게 주인에게 다시 물어봤다.

'이 근처에 숙소가 있나요?'

대답은 없단다. 30km 를 더 가야 한단다. '이런....'

사방은 어두워지고, 비는 계속 오는데....

일단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 그나마 찾은 구멍 가게에 들어갔다. 음료수와 빵을 사고, 비를 피해 처마 밑에서 먹었다.
가게의 청년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이 근처에 숙소가 있나요?'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출발하려는데, 그가 나에게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베트남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는데,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평소같으면 사양을 했겠지만,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는 화장실을 알려주며, 씻고 저녁을 먹으라고 했다. 마침 그들의 가족이 저녁을 먹고 있다며.
그렇게 얼결에 베트남 첫날부터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청년의 아버지가 권하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자 취기가 올랐고 급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낮에 변변히 먹은게 없어 거의 빈속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가족은 동생까지 총식구였는데, 그의 할머니가 놀러오셨다고 했다.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식사 내내 나보고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후한 대접을 받으며, 몽롱한 상태로 마련해준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거의 처음 술을 먹은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온몸이 붉게 물들며 열이 나기 시작했고, 모기떼들에게 헌혈을 하며 잠이 들었다. 너무 가려워 도중에 잠에서 깼다가 모기를 잡고 다시 잠이 들었다.

중국에서도 첫날 그랬지만, 베트남 역시 시작부터 고마운 귀인을 만났다. 좋은 예감이다. 

PS. 정전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걸 보면, 이곳 전기 사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여기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라, 가로등이 없어 밤이 되면,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만으로만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로그 정보]

달린 거리 : 112.17 km
누적 거리 : 4814.8 km

[고도 정보]



[지도 정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