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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5일 월요일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출간된지 20 년이나 된 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의 카테고리를 정하기 어려운 책"

이 책의 초판이 1995년 3월이니 횟수로 20년이 되었다. 초판과 개정판을 합쳐 70쇄가 넘었을 정도로 스테디 셀러라 하겠다.

그동안 단지 제목만 얼핏 듣고 지나가다가, 이번에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다. 소설에서의 고전이 그렇듯이 세월이가도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은 나름대로의 비법(?)을 가지고 있으며 절대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강산이 두번 바뀔 동안에도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이라는 것은 분명 이책에 뭔가가 담겨있을 테다.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먼저 놀란 점은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전혀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 나온 왠만한 정치사회 분야 서적보다도 더 세련되 보였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1995 년도나 지금의 2014년이나 정치사회적으로 발전이 없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작년에 읽었던 '내이름은 욤비'가 떠올랐다.

이 책의 종류를 카테고리별로 분류한다면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 정치사회 서적일수도 수필 일수도, 기행문 일수도 있겠다.

어찌보면 저자가 파리에 오게된 후 생활하며 겪은 에피소드들을 기술하고 있지만, 그안에는 우리(한국)가 이제껏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이 담겨있다. 읽으면서 순간 머리가 띵~ 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똘레랑스 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일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것을 100%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저자같이 수년간 프랑스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분명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대략 이런 것이겠구나'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똘레랑스는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보나 몇 백년이나 앞서 일어난 프랑스 국민들의 투쟁의 결과로서 얻은 것이다.

지금껏 우리나라의 근대화 속도는 전세계 어디에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자화자찬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경제규모로 비견되는 몸집은 커졌을지 몰라도 두뇌에 해당하는 국민 의식이나 민주주의는 오래전에 성장이 멈춰버렸다.

민족성 또는 국민성으로 일컬어 지는 것들은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나의 바램이 있다면, 똘래랑스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기본과 상식이 담보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구절

1500 프랑이라는, 나에게는 적지 않은 학원비를 지불하면서 "택시운전을 시작하는데 자본이 들지 않느냐?"고, 그리고 "나 같은 사람도 시험 볼 자격이 있느냐?" 고 두 차례나 물었다. 자본이 들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상대는 의아한 표정으로 "처음부터 개인택시 운전사가 되지는 않는다"고 대꾸했다. 나의 어리석은 질문은, 전에 빠리에서 택시 운전을 한 한국사람의 택시가 벤츠 자동차였다는 것을 들어서 택시운전에도 모두 자본이 들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던 데서 나온 것이었다. 다음 질문인 "나 같은 사람도 시험 볼 자격이 있느냐" 에, "아니, 당신 같은 사람이 자격이 없다면 누가 자격이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였다. 내가 망명증명서를 제시했을 때 나온 말이었다.

너무도 당연한 반응인데도, 과연 만일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난민이 우리나라에서 동일한 상황에 놓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순간 '내이름은 욤비' 의 저자인 욤비씨가 생각났다. 그가 우리나라에서 난민 신청을 하기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죄없는 사람들을 고문하여 없는 죄를 실토하게 만들어 통치하던 지역에서 새로운 관리가 부임을 해왔다. 그는 하급 관리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벌였다. 그러던 중 밀감하나가 부족한 것을 보고 한 하급관리에게 죄를 묻는다. 처음에는 부인했지만, 새로운 관리가 형벌을 내리려하자, 죄를 시인했다. 그러자, 새로운 관리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밀감하나를 꺼냈다. 이처럼 고문이 죄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현 세태를 꼬집는 얘기다. 

아주 오랜 옛날의 얘기라고 하는데, 지금 현재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사람이 미래를 모르고 살면 불안하긴 하나 위험하지는 않단다. 아니, 미래를 모르고 사는 것이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단다. 그러나 과거를 모르고 사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란다. 그것이 개인의 과거였든 민족의 과거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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