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일지를 통해 프로젝트 개발 스킬을 넘어서 20대 청년이 고민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전공서적 + 자기계발서의 느낌을 받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하게되는 계기를 꼽으라면, 거의 대부분 게임이라고 할 것이다. 이과를 선택하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지금껏, 컴퓨터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시작은 게임이었다.
페르시아의 왕자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고, 해봤을 아주 유명한 게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 게임보다 다른 게임을 더 즐겨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이 게임을 만들면서 기록한 1985 에서 1993 년까지의 개발 일기를 엮은 것이다.
지금도 '페르시아의 왕자' 하면 떠오르는 것은 걷거나 뛸 때, 주인공의 부드러운 움직임이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동작 하나 하나의 움직임을 실제 사진으로 찍어 이를 다시 디지털 데이터화 시키는 작업을 했다. 지금과는 달리 80년대 중후반의 기술로는 장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었다.
저자가 코딩은 물론, 기획, 일정, 그래픽, 사운드, 판매 거의 모든 것을 혼자 맡아서 해야 하는 터라 이에 대한 고충이 일기에 잘 나타나 있다. 20대 초반에 예일대를 졸업할 정도로 똑똑한 저자 였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또한 저자는 이미 '카라테카' 라는 게임으로 어느 정도의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제작 말고도,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나름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 개발 도중에 뉴욕대 영화과에 입학원서를 넣기도 한다(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여기서 포기하지않고, 게임 개발과 시나리오 작성을 병행한다(샌프란시스코와 뉴욕을 오가면서). 오직 저자 였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
어린 나이에 성공을 맛 본 저자는 시간, 돈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전세계를 여행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게임 제작자와 시나리오 작가)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저자도 미래를 고민했던 흔적을 군데군데 찾을 수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의 왕자'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게되지만, 이것이 하루아침에 식은 죽 먹기로 이뤄낸 것은 아니다.
4년간 대략 3,800 시간 그러니까 풀타임 작업 일수로 쳐도 2년을 채울 만큼의 시간을 쏟아부은 결과였다. 지금은 게임 개발에 있어서 모든 분업화가 되었지만, 그시대에나 가능했던 1인 개발 프로젝트를 보면서 한가지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
메모리상에 플레이어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던 나머지, 다른 캐릭터를 추가하는 데 필요한 메모리가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만약 주인공의 각 프레임에 배타적 논리연산(XOR)을 걸어 픽셀 값을 1 비트씩 밀어보면 어떨까? 눈앞에 유령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윤곽을 가진, 검은 색 옷에 얼굴과 팔은 하얀, 주인공을 쫓아 주인공처럼 달리고 뛰는 새 캐릭터가 떠올랐다.
단지 불과 몇 비트를 줄이기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고민하던 저자는 결국 XOR 비트 연산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이 일기장을 래프팅 여행 때 가져가야 할까? 있으면 좋긴 하지. 카메라를 가져가는 사람도 있는데, 일기장이 안 될 이유는 없잖나?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휴가다. 이 일기는 이를테면, 나를 나 스스로에게 단단히 묶어 두기 위한 밧줄 같은 물건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이걸 적는 걸 보기라도 하면, 내가 요즘 느끼는 바로는, 좀 무례해 보일 수도 있다. 그들과의 소통을 차단하는 행위이니까. 내가 애초에 이런 식의 여행을 가겠다고 한 이유 중 하나였던, 일행 간의 유대감 형성 과정에 해가 되는 짓이다. 일기장은 집에 두고 가야겠다. 그 대신, 여행하는 동안의 하루하루에 더 집중하자.
돌이켜보면, 휴가라고 해도 온전한 휴가를 즐기지 못한 것 같다. 몸은 회사에서 떠나있지만, 머리 속은 회사 일로 꽉 차 있는. 오롯히 쉬러 갈 때에는 일부러라도 방해가 될 물건들은 놔두고 가야 한다.
돈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실감이 거의 나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다. 끔찍한 건, 이젠 이리도 돈이 많다 보니, 이걸 지키고픈 옥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열차 게임을 개발하기로 결심한 게 차라리 다행이다. 돈을 얼른 쓰고 신경을 끊어 버려야 겠다. 이런 보수적인 과욕은, 적어도 지금은 내겐 없어도 된다. 아직 젊고 세상이 다 내 것 같으며 돈도 굴러 들어올 때, 한 번 제대로 주사위를 굴려보지 않으면, 또 언제 이럴 때가 오겠나? 나도 내 자신이,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절제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못하고 망설였던 것을 후회하는 사람임을 너무도 잘 안다. 내 평생 아직 사치스러운 선물을 받아 본 적도, 이거 비싼 거라고 허세를 부려 본 적도, 나중에 후회할 만큼 분별없이 쾌락을 탐닉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만 잔뜩 든다. 그때가 정말 딱 좋았었는데,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텐데, 왜 나는 망설였던가? 물론 내가 다른 쪽을 선택했더라도 어긋났을 가능성도 있다. 미래를 생각지 않은 결정으로 내 인생을 망쳤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아직 그럴 가능성에 가까이조차 가보지 못한 것 같다.
젊은 나이에 성공하여 돈과 명예를 거머쥔 저자조차 후회하는 것은 바로 한 것보다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깨달은 성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는 현재 작가, 게임 디자이너, 영화 각본가, 영화 제작자 등의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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