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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5일 월요일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 그래픽 노블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독자로 하여금 책에 몰입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이를 위해 글 대신 만화를 선택했고(자신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하여 1인칭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선택은 200% 적중했다고 본다. 읽는 내내 책에 빠져들었고, 읽고 나서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쥐' 가 떠올랐다. 또 요즘 읽기 시작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도 떠올랐다.

이야기는 주인공(저자의 아버지)이 양로원에서 자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왜 그는 자살로서 인생을 마감했을까?

책은 아버지의 인생을 보여주면서, 왜 자살이라는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해준다.

1911년 스페인의 가난한 농촌에서 주인공은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성년이 되기까지, 제대로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농사일만 전념해야 했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을 얘기할 수 없었고(만약 그랬을 땐, 아버지에게 호되게 맞았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허리한번 제대로 못 펴보고 일 만해야 했다.
소년은 성장하면서 마을을 떠나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현재의 삶보단 더 나은 삶을 찾아 어느날 도시로 나갔다. 그곳에서의 생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대 중반 무렵, 쿠데타로 인해 좌우 간의 이념 대립이 극심해지고 있었다. 그의 신념은 정의로운 것이었다. 정부군에 강제로 징집되었지만, 목숨을 걸고 탈출해 반정부군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총을 잡지 않았고, 대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운전병으로 근무하게 된다. 그러던 중,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독일의 침략을 받아 프랑스로 탈출한다. 하지만 프랑스 마저 독일에 투항하면서 갈 곳 없는 신세가 된다.

위기의 순간마다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부대에서 만난 동료를 따라 암시장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게 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그만둔다.

독일이 패망하면서 평화가 찾아온 듯 했지만, 그의 조국 스페인은 아직도 독재 군부 정권이 버티고 있었다. 결국 사촌 동생의 도움으로 스페인으로 돌아오게 되고, 정부 고위 관료의 운전사로 일한다.

그런 와중에도 그가 반 정부군에서 근무했을 때, 다짐한 그의 신념을 기억하고, 당시 만들었던 반지를 간직한다.

치열한 삶을 살아가면서 알게된 여자와 결혼을 하면서 그의 신념을 버리고 현실에 부합하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이후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잉여 생활들이 지속된다.

주인공의 삶은 이념 갈등으로 촉발된 전쟁을 겪은 세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고, 지금 세대들과는 다르다고 위안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50년전, 100년전에 살았던 주인공의 삶이 지금 현재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특히 양로원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우울증을 앓을 수 밖에 없었고,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앞으로 내가 경험하게될 모습이라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그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욕할 수는 없다. 누구 한사람에게 잘못을 떠넘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할 때마다 마음에 불편함을 느꼈고, 죽는 순간에야 비로소 그의 신념대로 행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지만, 그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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