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 버스에서의 하룻밤을 어렵사리 견뎌내고, 오전 7시 30분경 비엔티안 북부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빡세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남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오전 8시 30분에 출발하는 VIP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오전에 출발하는 VIP 버스는 없단다. 아마도 오타인 듯 싶다.
오전에는 일반 local 버스 밖에 없는데, 소요시간이 15~17시간이다. 계산을 해보니 도착시간이 한밤 중이다. 고민 끝에 또다시 저녁에 출발하는 sleeping 버스 티켓을 샀다.
그리고 간밤에 제대로 못 잔 탓에 저녁까지 묵을 숙소를 찾았다. 버스터미널 근처의 숙소를 찾았고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여 30000킵에 잡았다.
11월 하순이기는 하지만 한 낮에는 서있기만 해도 온 몸에 땀이 흘렀다. 숙소에서 찬물에 샤워를 해도 얼마 못 가서 땀이 말라 다시 더위를 느꼈다. 낮잠을 자고, 버스 출발시간에 맞춰 숙소를 나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Sleeping 버스라서 어제 탔던 버스를 생각했었는데 어제보다 훨씬 시설이 좋았다. 자리가 좀더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출발하기 전에 근처 식당에서 국수를 한 그릇 먹었다. 먹으면 먹을 수록 내 입맛에 맞는다.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다. 한 눈에 내가 한국사람인 줄 아셨단다.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라고 했다. 동양사람으로 보임에도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30년 이상 살았다고 하셨다.
지금은 은퇴 후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참 부러운 인생이다.
또 그는 엔지니어였다고도 했는데 파나소닉에서 TV 1세대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후 미국에서 직장을 다녔다고.
프로그래머로서 코볼을 사용했고 종이에 구멍을 뚫어 사용하는 펀치기계를 사용했다고 했다.
일본과 한국이 점차 비슷해져서 비인간화(기계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걱정하셨는데,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단점이 더 많아졌다고도 했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보다 기계에 의존하게 됐다면서.
그는 국적이 미국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면서 자신의 고향인 베트남의 아이들을 돕는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었다.
비엔티안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여주기도 했는데, 매일 아침 볼 수 있는 탁발공양을 하는 장면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여태껏 보지 못했다.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날에 들르게 되는 비엔티안에서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보고 싶은 광경이다.
안 되는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같은 분야의 일을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와 내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자신의 노후를 즐기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일하는 그런 삶.
또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만들었다는 노래도 들려주었다. 작사, 작곡, 연주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단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자신의 프로젝트 홈페이지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단, 1달러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과 함께.
나의 목적지를 물으시길래 시판돈이라고 대답했고, 함께 가자고 하셨다.
몸이 적응한 탓인지, 어제보다는 편하게 잘 수 있었다.
빡세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남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오전 8시 30분에 출발하는 VIP 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오전에 출발하는 VIP 버스는 없단다. 아마도 오타인 듯 싶다.
<버스터미널에서는 바게뜨 빵을 판매하는 노점을 쉽게 볼 수 있다>
오전에는 일반 local 버스 밖에 없는데, 소요시간이 15~17시간이다. 계산을 해보니 도착시간이 한밤 중이다. 고민 끝에 또다시 저녁에 출발하는 sleeping 버스 티켓을 샀다.
그리고 간밤에 제대로 못 잔 탓에 저녁까지 묵을 숙소를 찾았다. 버스터미널 근처의 숙소를 찾았고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여 30000킵에 잡았다.
11월 하순이기는 하지만 한 낮에는 서있기만 해도 온 몸에 땀이 흘렀다. 숙소에서 찬물에 샤워를 해도 얼마 못 가서 땀이 말라 다시 더위를 느꼈다. 낮잠을 자고, 버스 출발시간에 맞춰 숙소를 나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Sleeping bus. 이번에는 과연 어떨지?>
Sleeping 버스라서 어제 탔던 버스를 생각했었는데 어제보다 훨씬 시설이 좋았다. 자리가 좀더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출발하기 전에 근처 식당에서 국수를 한 그릇 먹었다. 먹으면 먹을 수록 내 입맛에 맞는다.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다. 한 눈에 내가 한국사람인 줄 아셨단다. 이유를 물어보니 한국인 친구가 있어서라고 했다. 동양사람으로 보임에도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셨다.
이유를 물어보니, 베트남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30년 이상 살았다고 하셨다.
지금은 은퇴 후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참 부러운 인생이다.
또 그는 엔지니어였다고도 했는데 파나소닉에서 TV 1세대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후 미국에서 직장을 다녔다고.
프로그래머로서 코볼을 사용했고 종이에 구멍을 뚫어 사용하는 펀치기계를 사용했다고 했다.
일본과 한국이 점차 비슷해져서 비인간화(기계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걱정하셨는데,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단점이 더 많아졌다고도 했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보다 기계에 의존하게 됐다면서.
그는 국적이 미국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면서 자신의 고향인 베트남의 아이들을 돕는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었다.
비엔티안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여주기도 했는데, 매일 아침 볼 수 있는 탁발공양을 하는 장면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여태껏 보지 못했다.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날에 들르게 되는 비엔티안에서 시간이 허락한다면 꼭 보고 싶은 광경이다.
안 되는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같은 분야의 일을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와 내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자신의 노후를 즐기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일하는 그런 삶.
또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만들었다는 노래도 들려주었다. 작사, 작곡, 연주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단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자신의 프로젝트 홈페이지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단, 1달러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과 함께.
나의 목적지를 물으시길래 시판돈이라고 대답했고, 함께 가자고 하셨다.
몸이 적응한 탓인지, 어제보다는 편하게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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