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첫날 도착지였던 비엔티안 남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임에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급한 대로 가이드북에 나온 가까운 곳을 위주로 돌아다녔다.
파텟주앙
남부 버스 터미널과 가장 가까운 파텟주앙을 가장 먼저 갔다.
오전 8시부터 개장이라 먼저 가서 주변 사찰의 건물들을 둘러봤다.
가운데 우뚝 솟은 탑이 마치 피라미드를 연상케 했다.
빠뚜사이
가이드북에는 비엔티안의 개선문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내가 보기엔 우리의 독립문을 닮지 않았나 싶다.
재미있는 것은 기념탑 위에 올라갈 수 있는데 다만, 걸어올라 가야 한다. 기억하기로는 7~8층을 걸어올라 가야 위에 다다를 수 있다.
비엔티안에는 고층빌딩이 없어 위에서 사방으로 뚫린 시야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라오스는 점심시간을 준수한다. 예를 들어 12~1시까지 점심시간이면 모든 곳이 업무를 중지한다. 심지어 관광지 마저도 말이다. 왓시사켓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매표소에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와있고, 관광객들은 그 옆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참에 점심이나 먹을 겸 가이드북에 나온 인도식당에 들렀다.
COPE 센터
라오스가 공산주의에 넘어가자 미국이 라오스 상공에 대인 지뢰를 투척했고 이것들 중 대다수가 터지지 않고 그대로 땅 속에 묻혀있다고 한다. 이후 일반인들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지뢰가 터져 발목을 절단하는 사고를 겪게 된다고.
COPE 라는 단체는 이런 사고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도와주는 비영리단체이다. 이 COPE 센터는 이런 활동을 홍보하고 기부를 받기도 한다.
왓시사켓
점심을 먹고 왓시사켓, 호파깨우에 갔다. 라오스의 유적들을 보면서 느끼는 공통된 생각은 복원되지 못한 파괴된 유적들이 많다는 것이다.
불상의 경우 목이 없거나 신체 일부분이 없는 것을 자주 본다. 사찰 건물 또한 마찬가지다.
금이 가거나 떨어진 문, 그림이 지워지거나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것 등.
유물의 발굴과 보존보다는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이 많아서 이에 대한 여력이 부족해보일수도 있겠다.
호파깨우
호파께우에서는 대규모 단체 관광객들이 보였는데, 불상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라오스 국립박물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라오스 국립박물관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쉬는 날인가 싶을 정도로.
사진 촬영을 금지해서 사물함에 넣고 들어갔다. 연대순으로 유물을 전시했는데, 기존의 사원에서 보던 유물과는 달리 거의 복원된 것들이어서 눈에 띄었다.
한 켠에는 그들이 복원했던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했다.
옛날부터 라오스에는 코끼리가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 왕이 행차를 하거나 전쟁을 할 때도 코끼리에 올라타서 수행했다(이를 표현한 여러 가지 그림들이 있었다)고 한다.
후반 부에는 프랑스의 침략을 받으면서, 그리고 미국으로부터의 전쟁을 겪으면서 찍은 참상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라오스는 현재 1당 독재의 나라다. 50년(?)대 처음으로 선거를 치르고 그 이후 선거가 없다. 현대에 관한 자료들은 현재 당의 활약상(?)을 홍보 전시한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민주화의 시기는 요원해 보인다.
실제 비엔티안 곳곳에 대형건물들이 세워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라오스 국민들의 삶과는 매우 동떨어져 보일 만큼 화려하고 거대했다.
한 켠에는 라오스 부족의 전통의상을 전시해 두었는데, 그들이 만든 옷은 지금에 봐도 정교하고 이름다웠다.
점차 현대화의 영향을 받아 사라지거나 그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조마베이커리라는 빵 가게에 들러 조각파이와 패스츄리를 샀다. 지금까지 먹은 식사 중 가장 비싼 식사임에도 라오스에서 가장 강추하는 곳이라 구입했다.
예상대로 까페 내에는 거의 외국인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숙소에 가져와서 먹어봤는데 역시 소문대로 맛있었다.
현재 가진 라오스 현금을 세보니 약 50000킵 정도 된다.
저녁과 내일 아침까지의 식사를 생각하면 약간 빠듯한 금액이다. 그래서 저녁은 근처의 야시장에서 먹기로 했다. 그곳에서 파는 것들의 대부분이 반찬이나 꼬치나 치킨 같은 것들이다.
게다가 가격을 알 수가 없으니 무턱대고 고를 수도 없는 탓이었다.
게 중에 가장 만만해 보이는 치킨을 골랐다. 5 조각을 골라 넣고 2만킵 지폐를 건 냈더니 딱 맞았는지 거스름돈을 안 준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물 한 병과 묶음 할인과자 한 상자를 샀다. 라오스의 마지막 밤 만찬은 이렇게 조촐하게 마무리 되었다.
처음 목적은 아무것도 안하고 쉬려고 했음에도 웬만한 곳은 다녀왔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것 같다.
자전거도 잘 버텨주었고, 사고 없이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갑자기 어제 만났던 카렌과 프랑스 학생들, 그리고 버스에서 베트남 계 미국할아버지,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고 싶어졌다.
지금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다시 또 볼 수는 없을 거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한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여행이 내 인생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여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PS. COPE 에 들어가려는데, 방금 전 도로에서 인사한 자전거 여행자가 들어온다.
자신을 크리스라고 소개한 그는 지금 세계일주 중이라고 한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내려놓고 오는 길이라고.
카렌에게 했던 동일한 질문을 했더니,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칠 생각이란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다.
첫날 도착지였던 비엔티안 남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임에도 제대로 보지 못해서 급한 대로 가이드북에 나온 가까운 곳을 위주로 돌아다녔다.
<라오스에서의 흔한 도로 풍경>
파텟주앙
남부 버스 터미널과 가장 가까운 파텟주앙을 가장 먼저 갔다.
오전 8시부터 개장이라 먼저 가서 주변 사찰의 건물들을 둘러봤다.
<탑 주변에 복원이 필요한 조각품들이 많았다>
빠뚜사이
가이드북에는 비엔티안의 개선문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내가 보기엔 우리의 독립문을 닮지 않았나 싶다.
<천장에는 화려한 장식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기념탑 위에 올라갈 수 있는데 다만, 걸어올라 가야 한다. 기억하기로는 7~8층을 걸어올라 가야 위에 다다를 수 있다.
비엔티안에는 고층빌딩이 없어 위에서 사방으로 뚫린 시야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라오스는 점심시간을 준수한다. 예를 들어 12~1시까지 점심시간이면 모든 곳이 업무를 중지한다. 심지어 관광지 마저도 말이다. 왓시사켓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매표소에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와있고, 관광객들은 그 옆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참에 점심이나 먹을 겸 가이드북에 나온 인도식당에 들렀다.
COPE 센터
라오스가 공산주의에 넘어가자 미국이 라오스 상공에 대인 지뢰를 투척했고 이것들 중 대다수가 터지지 않고 그대로 땅 속에 묻혀있다고 한다. 이후 일반인들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지뢰가 터져 발목을 절단하는 사고를 겪게 된다고.
COPE 라는 단체는 이런 사고로 장애를 입은 사람들을 치료하고 도와주는 비영리단체이다. 이 COPE 센터는 이런 활동을 홍보하고 기부를 받기도 한다.
<발굴된 폭탄들, 아직도 많이 묻혀있다고 한다>
<발목 지뢰>
<COPE 에서 지원하고 있는 의료 보조기구들>
왓시사켓
점심을 먹고 왓시사켓, 호파깨우에 갔다. 라오스의 유적들을 보면서 느끼는 공통된 생각은 복원되지 못한 파괴된 유적들이 많다는 것이다.
불상의 경우 목이 없거나 신체 일부분이 없는 것을 자주 본다. 사찰 건물 또한 마찬가지다.
금이 가거나 떨어진 문, 그림이 지워지거나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것 등.
유물의 발굴과 보존보다는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이 많아서 이에 대한 여력이 부족해보일수도 있겠다.
호파깨우
호파께우에서는 대규모 단체 관광객들이 보였는데, 불상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라오스 국립박물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라오스 국립박물관이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쉬는 날인가 싶을 정도로.
사진 촬영을 금지해서 사물함에 넣고 들어갔다. 연대순으로 유물을 전시했는데, 기존의 사원에서 보던 유물과는 달리 거의 복원된 것들이어서 눈에 띄었다.
한 켠에는 그들이 복원했던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했다.
옛날부터 라오스에는 코끼리가 많이 살았다고 하는데, 왕이 행차를 하거나 전쟁을 할 때도 코끼리에 올라타서 수행했다(이를 표현한 여러 가지 그림들이 있었다)고 한다.
후반 부에는 프랑스의 침략을 받으면서, 그리고 미국으로부터의 전쟁을 겪으면서 찍은 참상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라오스는 현재 1당 독재의 나라다. 50년(?)대 처음으로 선거를 치르고 그 이후 선거가 없다. 현대에 관한 자료들은 현재 당의 활약상(?)을 홍보 전시한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민주화의 시기는 요원해 보인다.
실제 비엔티안 곳곳에 대형건물들이 세워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라오스 국민들의 삶과는 매우 동떨어져 보일 만큼 화려하고 거대했다.
한 켠에는 라오스 부족의 전통의상을 전시해 두었는데, 그들이 만든 옷은 지금에 봐도 정교하고 이름다웠다.
점차 현대화의 영향을 받아 사라지거나 그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조마베이커리라는 빵 가게에 들러 조각파이와 패스츄리를 샀다. 지금까지 먹은 식사 중 가장 비싼 식사임에도 라오스에서 가장 강추하는 곳이라 구입했다.
예상대로 까페 내에는 거의 외국인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숙소에 가져와서 먹어봤는데 역시 소문대로 맛있었다.
<먹기전에 찍었어야 했는데, 먹고나서야 생각이 들었다>
현재 가진 라오스 현금을 세보니 약 50000킵 정도 된다.
저녁과 내일 아침까지의 식사를 생각하면 약간 빠듯한 금액이다. 그래서 저녁은 근처의 야시장에서 먹기로 했다. 그곳에서 파는 것들의 대부분이 반찬이나 꼬치나 치킨 같은 것들이다.
<라오스의 야시장>
게다가 가격을 알 수가 없으니 무턱대고 고를 수도 없는 탓이었다.
게 중에 가장 만만해 보이는 치킨을 골랐다. 5 조각을 골라 넣고 2만킵 지폐를 건 냈더니 딱 맞았는지 거스름돈을 안 준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물 한 병과 묶음 할인과자 한 상자를 샀다. 라오스의 마지막 밤 만찬은 이렇게 조촐하게 마무리 되었다.
처음 목적은 아무것도 안하고 쉬려고 했음에도 웬만한 곳은 다녀왔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것 같다.
자전거도 잘 버텨주었고, 사고 없이 여행을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이다 싶다.
갑자기 어제 만났던 카렌과 프랑스 학생들, 그리고 버스에서 베트남 계 미국할아버지,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고 싶어졌다.
지금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다시 또 볼 수는 없을 거다.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점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한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여행이 내 인생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여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PS. COPE 에 들어가려는데, 방금 전 도로에서 인사한 자전거 여행자가 들어온다.
자신을 크리스라고 소개한 그는 지금 세계일주 중이라고 한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내려놓고 오는 길이라고.
카렌에게 했던 동일한 질문을 했더니, 중국에서 영어를 가르칠 생각이란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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